EC21 Logo
메세지 바구니 ( ) 로그인  회원가입  안내  
left_top16.gif



Home Page
 
icon Multi Layer Ceramic Chip Capacitors - EDEN
icon Chip Resistors - Everohms
icon Crystal & Oscillator - SIWARD
icon DIODE & RECTIFIER - WONTOP
icon CHIP BEAD & INDUCTOR - EROC
icon 중소기업 무역업무 대행서비스

line

icon 회사 정보
icon 회사연혁
icon 게시판
icon 방명록
icon 인덱스

line


icon To English Page



http://www.ec21.com/
visitors: 206549










(주)알앤케이
 


중소기업 무역업무 대행서비스
이라크(Republic of Iraq)
Add to Basket Inquire now
이라크(Republic of Iraq)






◈ 요약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북 동부
면적 : 43만 5052㎢
인구 : 2242만 7000명(1999)
인구밀도 : 51.6명/㎢(1999)
수도 : 바그다드
정체 : 공화 제
공용어 : 아랍어
통화 : 디나르(Dinar, ID)
환율 : 1ID = 3.13달러(1999.10)
1인당 국내총생산 : 540달러(1996)

면적 43만 5052㎢. 인구 2242만 7000명(1999). 인구밀 도 51.6명/㎢(1999). 정식 명칭은 이라크 공화국(Republic of Iraq)이다. 수도는 바그다드이고 공용어는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 다. 이라크는 페르시아어(語)로 저지(低地)를 의미한다. 북쪽은 터키, 서쪽은 시리아, 요르단, 동쪽은 이란, 남쪽은 사우디아라 비아, 쿠웨이트에 접하며, 아라비아만(灣)에 면한다.

1. 자연

이라크의 국토를 구성하는 것은 중앙부 를 가로질러 흐르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두 강 유역에 발달 한 메소포타미아평원, 그 북부에서 북동부에 이르는 쿠르디스탄 산지(山地)와 고원지대의 서부·남서부를 차지하는 시리아·아라 비아 사막지대이다. 메소포타미아평원은 티그리스강 ·유프라테 스강의 유로를 따라 북서쪽에서 남동방향으로 가로놓여 있는데, 티그리스 강변의 사마라와 유프라테스강 하반(河畔)의 히트를 연 결하는 선을 경계로 상류지역은 해발 500m 전후의 기복이 심한 자지라구릉(丘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류지역은 이 두 하천 에 의해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국토의 1/3을 차지한 다.
하류 지역과 이 두 하천이 합류한 다음의 샤트알아랍강 (江) 연안에는 소택지(沼澤地)가 많다. 이란과 터키의 국경지대 를 달리는 쿠르디스탄산지는 이란의 자그로스산맥에 이어지는 험 준한 습곡산맥으로 해발고도 3,000m 이상의 높은 산들도 볼 수 있으며, 티그리스강의 분류와 그 지류인 대(大)자브강(江) ·소 (小)자브강(江)이 흐른다. 서부와 남부 지역은 광대한 사막지대 로 국토의 2/5를 차지한다. 시리아 ·아라비아 대지의 연변부에 이르러서는 해발 1,000m까지 이르나 메소포타미아평원을 향하여 많은 와디를 이루며 그 중 가장 큰 하수관은 전체 길이가 480km 에 이른다.
기후는 고온건조하며 여름철은 더위가 극심하여 바그다드의 7월 평균기온은 34.3℃나 된다. 1921년 7월 8일 바스 라에서 관측된 58.8℃는 세계 최고기록이다. 강수량은 쿠르디스 탄산지에서는 연간 400mm를 넘으나 남서부로 갈수록 점차 감소되 어 바그다드에서는 156mm를 기록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5∼ 10월에는 거의 강수량이 없다. 시리아 ·아라비아 대지는 기후 가 더욱 건조하여 사막경관을 이룬다. 터키 영토 내의 산지와 고 원에서 발원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 모두 유수량이 풍부 하여 샤트알아랍강을 형성,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어가며, 티그 리스강의 지류인 대(大)자브강 ·소(小)자브강 ·우자임 ·디얄 라 등도 쿠르디스탄산지, 자그로스산맥의 강수량을 모아 유수량 은 비교적 풍부하다. 삼림은 비교적 빈약한 편이나 국토의 약 1/10 정도가 키 작은 풀이 자라는 스텝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서부로 갈수록 건조기후에 적응하는 내염성 식물을 볼 수 있 다.

2. 주민

이라크는 아랍인이 전체 인구의 약 79%를 차지하여 압도적이며, 그 외 소수민족으로 쿠르드족이 16%, 페르시아계가 3%, 터키계가 2% 정도 차지한다. 특히 북부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할 뿐 아니 라 풍속, 생활양식 등이 달라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이라크의 중요한 내정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이 며 1970년 쿠르드족과의 평화협정 결과 쿠르드어의 공용어화를 인정하였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도로 시아파(派)가 절 반 이상을 차지한다.

3. 역사

메소포타미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하천문명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BC 4000년까 지 거슬러 올라가는 선사시대의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수메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가 흥망하였으며, 아케메 네스왕조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산왕조 페르시아 등 과 같은 외부의 침입과 정복도 받았다.
7세기 중기에는 아라 비아반도에 출현한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그 세력하에 들어가기 도 하였다. 8세기 중기에 시작된 아바스왕조 시대에는 쿠파, 바 그다드 등이 수도(首都)가 되어 이슬람 여러 나라의 중심 영역으 로서 중요한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1세기 중기 이후에는 셀주 크, 몽골,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으며,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 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투르크 제국(帝國)의 속주(屬 州)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페르시아만으로부터 영 국이 침공하여 전화(戰禍)를 입었다. 전후(戰後)에는 영국의 위 임통치령이 되었는데 이에 반항하는 독립운동이 무르익어 1932 년 메카의 하심가(家)의 파이살을 국왕으로 마침내 독립을 이룩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친독일정책을 취하였으며, 대전 후 1958년 7월 카셈 장군이 이끄는 청년장교들이 왕정을 타도하 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
그 후 잦은 쿠데타로 정치소요가 계 속되다가 1968년 바스당이 정권을 잡았으며 1979년 사담 후세인 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국가의 경제재건과 군사력 증강에 힘 써온 후세인 정부는 1980년 이란 침공,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등 으로 페르시아만의 정치적 불안을 가중시켰다. 특히 걸프전쟁에 패해 시아파 이슬람교도의 폭동과 쿠르드족의 자치운동 등으로 내정이 불안하고 전쟁피해와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조치 등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4. 정치

이라크는 1968년 쿠데타로 독특한 이슬람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바트당 이 집권한 이래 사실상 1당독재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최고기관 은 혁명평의회(RCC)로서 9인으로 구성되며, 국가원수인 대통령 은 혁명평의회에서 선출되는데 당서기장, 혁명평의회 의장, 군 총사령관을 겸임한다. 임기는 무기한이다. 1979년 7월 16일 A.H. 바크르 대통령이 사임하고, 후임에 사담 후세인이 선출되었 다.
왕정 붕괴 이후 22년 만에 최초로 1980년 6월 총선이 실 시되고, 7월 단원제 국민의회가 구성되었다. 정원은 250명이고, 임기는 4년이다.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도 같은해 9월 총선을 실시하고 50명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후세인 정부는 이란의 팔레 비왕조가 붕괴되자 혼란을 틈타 1980년 9월 17일 국경을 침입하 였는데,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하는 이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 쳐 8년간 전쟁을 벌이다가 1988년 8월 20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 사회의 정전결의안을 수락하고 휴전하였다.
1989년 4월 제3 차 총선에서 집권 바트당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계 속된 전쟁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의 권력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1990년 7월 18일 혁명평의회가 마련한 헌법수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 신헌법안은 ①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하고, ② 임기는 8년이며 연속 출마할 수 있고, ③ 혁명평의회를 해산하고 자문평의회를 설치하며, ④ 자문평의회 의원 50명 중 25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는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신헌법의 시행 시기는 미정이 다.
또한 의회는 후세인을 종신 대통령으로 한다는 결의안 을 채택하였다. 이라크는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 하여 점령하고 자국의 19번째 주(州)로 편입하였다. 이에 1991 년 1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대대적 공습과 지상전을 전개해 이라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였 다. 전쟁 후유증으로 후세인 정부가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북부 의 쿠르드족 자치구와 남부의 시아파 반군은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였다.
1992년 5월 쿠르드족 자치구는 이라크와 별도의 정부 를 출범시키기 위한 총선을 실시하였는데 선거 결과 쿠르드민주 당(DPK:Kurdistan Democratic Party)과 쿠르드애국동맹 (PUK:Patriotic Union of Kurdistan)이 각각 50석씩 차지하였 다. 후세인은 쿠르드족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부 시 아파 반군에 대한 전면적 소탕작전을 개시하였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1992년 8월 북위 32도 이남의 이라크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1993년 1월 대대적 공습을 감행하였 다.
1996년 9월에는 이라크 영내 남부 비행금지구역의 북발선 을 북위 33도로 확대하여 공격을 감행, 이라크와 충돌하였다. 그 러나 9월 13일 이라크의 비행금지구역 내 미국 및 서방진영의 비 행기에 대한 공격을 중단함으로써 위기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이 로써 이라크는 식량과 의약품 구입을 위한 석유판매가 부분적으 로 허용되기도 하였다. 1996년 3월 24일에 치른 의회선거 결과에 서는 집권당인 바트당(Bathists)이 160석, 무소속이 60석을 차지 하였다.

1) 외교
이라크는 중동지역 비동맹운동의 지 도국을 자처하면서 강력한 반미 ·반이스라엘 노선을 취 한다. 1968년 아랍사회주의바트당 집권 이후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 지해 오다가 1984년 11월 국교를 회복했으나, 1990년 걸프전으 로 다시 냉각되었다. 북한과 68년 1월 수교하였으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북한이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1980년 10월 단교하 였다. 한국과는 1977년 3월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이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2) 군사
이라크는 징병제 를 채택하고 있으며, 18세 이상 모든 남자는 21∼24개월 동안 의 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전쟁시에는 연장된다. 민병 48 만 명을 포함하여 총 100만 명의 대병력을 보유했으나 걸프전 (戰)에서 상당한 병력 손실을 보았다. 최근 병력수는 육군 35 만, 공군 3만, 해군 1천 명으로 총 38만 여 명으로 추정된다.

5. 경제

이라크는 국유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 가계획관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972년 바크르 정부는 석유의 국유화를 단행하였다. 석유 수출이 재정수입의 99%를 차지하여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으나 1990년 이후 서방으로의 석유수출이 중단되면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취업인구의 80% 를 점유하는 농업은 건조기후에 속하여 경지율이 17% 정도에 불 과한 데다 최근 몇 년 간의 흉작으로 식량위기에 직면해 있다.
연간 400mm 이상의 강수량을 가진 북부지역에서는 강수량에 만 의존하는 천수경작(天水耕作)만이 가능하지만, 주요한 농업지 역인 메소포타미아평원에서는 하천의 자연유하(自然流下)나 양수 에 의한 관개농업이 행해지고 있다. 겨울철 농작물로는 밀, 보 리, 아마, 두류(豆類), 여름철 농작물로는 쌀, 목화, 잎담배, 야 채 등이 재배되며 메소포타미아의 하류지역에서는 대추야자가 재 배되는데 그 열매는 주요 수출품이다.

이라크의 주요한 광물자원은 석유와 천연가스이다. 석유매장량이 세계 제2위이며 유전은 주로 북서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석유의 채굴은 1927년 북부의 키르쿠크 유전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외에 모술 부근의 아인자라 유전, 바스라 근방의 즈바이르 유전이 개발되었다. 석 유는 파이프라인으로 지중해 연안의 트리폴리(레바논), 비니아스 (시리아)로 송유되는 외에 바스라에서도 수출된다.
석유개발 에서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자본으로 이루어진 이라크석유회사(IPC)와 그 관련회사가 국토의 거의 전역의 이권 을 가지고 있었으나, 1961년에 이권지역의 99% 이상을 정부가 몰 수하고, 1964년에는 이라크국영석유회사(INOC)를 설립하는 등 자 주적인 개발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다시 1972년에는 이라크석유 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하였다. 1999년 현재 일일 원유 생산량은 220만 배럴이다.
공업의 발달은 낙후된 편이나 재래방식의 식 품가공, 직물, 담배, 벽돌 등의 공업에 이어 시멘트, 석유정제,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의 근대공업도 발달되고 있다. 개발사업 으로서는 석유 이권에 의한 수입을 재원으로 한 티그리스, 유프 라테스 수계(水系)의 치수, 수자원 개발사업이 진전되고 있으며 농지개혁, 농업기계화 등 농업면에서의 근대화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이라크의 최대수출품은 석유로 수출총액의 약 99%를 차 지하나, 기타 대추야자의 과실, 시멘트 등도 수출되고 있다. 1998년 수출액은 50억달러이고 수입은 30억달러이다. 무역 상대 국은 수출에서는 러시아, 프랑스, 요르단, 오스트레일리아, 중 국 등이다. 이라크의 국영철도는 바그다드∼바스라 간 간선철도 와 바그다드에서 시리아∼터키로 통하는 바그다드 철도 등이 있 으며, 총연장은 2,030km에 이른다. 자동차 교통에 의존하는 곳 도 많아서 도로망도 발달되어 있다. 바스라항(港)은 최대의 무역 항이며 바그다드와 바스라에 국제공항이 있다.

6. 사회

주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랍인과 소수민족 간의 인 종분쟁과 이슬람교 각 종파간의 종교분쟁이 잦다. 아랍인 중에 는 7세기의 대이동 때 아라비아반도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계 통과, 원주민이 아랍화(化)한 계통이 있으며, 그 비율은 거의 반 반이다. 쿠르드인은 이란, 터키, 시리아에까지 걸쳐 거주하는 북 부 쿠르디스탄 지방의 페르시아계(系) 주민으로 이라크 영토 안 에 약 100만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의 95% 이상은 이슬람교 도로서 북부지역에는 정통파와 수니파가, 남부지역에는 분파(分 派)의 시아파(派)가 많다. 일상생활은 이슬람 교도가 지켜야 하 는 1개월 간의 단식, 날마다 있는 예배 등의 종교적 실천과 금주 (禁酒) 등의 계율엄수가 바탕이 되어 있다. 일반주민의 주거는 햇볕에 말려 만든 벽돌로 지은 집이 기본이나 메소포타미아 하류 지역에서는 대추야자의 잎을 사용한 주거가 일반적이다. 1972년부터 전교육과정이 무료이며 초등교육 6년이 의무교육으 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문맹률 이 비교적 높아 1970년 말부터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요 일간지 3개, 국영방송 및 텔레비전방송국 6개, 라디오방송 국 4개 등이 있으나 언론은 국가에서 통제하고 있다. 오랜 역사 를 가졌기 때문에 유적, 사적, 누린 바빌론의 유적은 바그다드에 서 남쪽으로 약 85km 떨어진 유프라테스강 연안에 있으며, 20세 기 초의 발굴에 의하여 신바빌로니아시대 전성기(BC 7세기)의 신 전, 성탑, 왕궁, 성벽 등의 유구(遺構)가 밝혀졌다. 메소포타미 아의 남부에 있는 수메르인(人)의 고대 도시 우르의 유적과 북부 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의 유적들로 그 유구의 해명 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크테시 폰은 바그다드 남동쪽 약 3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AD 6세기에 호 슬로 1세에 의하여 건조된 왕궁의 돔(dome)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카르발라에는 AD 7세기에 이곳에서 순교한 이슬람교 시아 파(派)의 시조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일가의 묘소가 있어 그 남쪽 나자프에 있는 알리의 묘소와 같이 시아파의 성지로 되어 있다. 바그다드 북쪽 120km에 위치한 사마라에는 아바스왕조의 AD 9세 기 후기에 건조된 나선상(狀)의 미날레트(이슬람사원의 첨탑)가 남아 있다.

7. 문화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는 문학과 예술생활이 크게 바뀌어 발레와 극장, 현대 미술 등이 쏟 아져 들어왔다. 문학 중 시가 많이 발전하여 아랍어를 쓰는 나라 에 많이 알려졌다. 문화정보부는 가죽제품, 구리제품, 카페트 만 들기와 같은 전통 공예와 예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바그다드에는 많은 미술관과 국립도서관이 있다. 도시에는 또한 8~9세기의 아브바시드 건축이 남아있다.

9. 대한관계

이라크는 북한과 1968년 정식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한 국과는 1981년 영사 관계, 1989년 대사급 관계를 맺음으로써 남 북 동시수교국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이란을 지원함으로써 1980년 단교조치되었다.1991년 1월 공관을 잠정 폐쇄하였다. 1997년 알 사드 외무장관 법률고문이 방한하였 다.
한국과는 1982년 뉴스협정, 1985년 항공협정 및 문화협 정, 1987년 외교 공관부지 교환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77년 건 설업체의 첫 진출 이후 한국의 중요한 해외건설시장이 되고 있 다. 1998년 현재 대한(對韓) 수입 202만 5,000달러, 대한 수출 6,588만 6,000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원유이며 수입품은 기계 류, 철강제품 등이다. 1999년 현재 교민 및 체류자는 8명이다.


button button button button       


[ 연락처 정보 ]
icon Company (주)알앤케이
icon Address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20 캐슬타워 101-405
(우:463-480) 한국
icon Phone 82 - 31 - 8986507~8
icon Fax 82 - 31 - 8986510
icon Homepage http://www.innonics.kr
icon Contact 김충회 / 이사

 
line